올린이 : 관리자 조회수: 327 2009-04-10 14:24:25
노조 간부의 자세 와 역할

간부의 역할과 자세’라는 주제의 교육을 나가게 되면 새로 간부가 된 사람들은 뭔가 딱 부러지는 정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새로운 간부들이 조합활동을 하는데 있어 도깨비방망이 같은, 뭔가 기발한 경험이나 원칙을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노동조합 간부에게 요구되는 실무적인 것은 하다 보면 누구나 다 체득할 수가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간부로서 노동자적인 입장과 노동자적인 자세를 올바로 갖추는 것입니다. 사실 올바른 노동자적 입장과 노동자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면 실무적인 역량들을 습득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음은 바람직한 노동조합간부, 바람직한 노동운동가가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올바른 노동자적 입장과 올바른 노동자적 자세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올바른 노동자적 입장

1). 인간을 중심으로 보아야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사람이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로서 대접받지 못했음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혈연과 돈과 권력의 있고 없음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받고 세상은 불평등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판단과 자각에 따라 실천하고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운동의 시발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투쟁을 하게 됩니다. 억압, 수탈, 착취 등의 제반 요소들이 노동자들이 바라는 인간적인 삶을 제약하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도전이, 즉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풍요롭게 만들려는 노력이 바로 노동운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노동운동은 인간해방운동입니다. 인간해방이라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일하는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본능적인 저항, 자각된 저항, 이것이 바로 노동운동입니다. 70년에 분신한 전태일 열사도 학식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애정이 많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문제이다” 이것을 철학적, 논리적으로 분석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 대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있는 사람의 사회관은 역시 ‘인간 중시’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태일 평전의 핵심입니다.
뿐만 아니라 87년 7,8,9월 약 3개월 동안에 3천5백여 건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가장 많이 나왔던 구호가 무엇이었습니까?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분노나 불만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쌓여 있다가 7․8․9 투쟁으로 터져 나온 요구가 바로 인간답게 살아보자 였습니다.
노동조합 운동은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고와 실천을 기본으로 요구합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동료를 억압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노동운동의 출발점입니다. 가장 인간답게 살고 싶은 소박한 요구가 노동운동의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노동조합 간부는 인간을 가장 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2). 현실을 바로 보아야

현실을 바로 보지 않으면 투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전체 정세가 어떠하고, 우리의 힘과 상대방의 힘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으며,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를 잘 판단하지 못하면 투쟁에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을 바로 보고 상황을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현실을 개혁하는 노동운동

그런데 문제는 현실운동이라고 해서 현실에만 핑계를 대고 안주해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응당 자본이 판치는 세상이니까 아무리 해도 깨진다, 87년 같은 경우는 좀 특별한 경우였다, 봐라 지금은 노동자의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느냐, 이럴 바에는 실리주의로 나가자” 하는 식으로 된다면, 점차 노동자의 지위가 향상되기는 커녕 오히려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운동은 현실운동이기 때문에 현실을 잘 파악하여야 합니다. 물론 현실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고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현실을 잘 파악만 하고, 인정만 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을 잘 파악하여 현실을 개혁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실을 개혁하는 노동운동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의 처지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실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모순된 것을 개혁하는 것이 노동운동인 것입니다.

그런데 돈과 권력을 가진 자본가와 기득권층은 현실을 가능하면 숨기려고 합니다. 반면 노동자, 농민, 서민 등 민중들은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공직자들이 재산등록을 했는데 등록하는 입장에서는 부정비리가 밝혀지니까 괴롭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입장에서는 신바람 납니다. 공직자의 거짓이 다 드러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87년에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6.10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또한 지배세력은 매스컴을 동원해서 가능하면 현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적어도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 합니다. 일반 서민들이나 국민들이 TV에서 노동자생활을 있는 그대로 매일 3-4시간씩만 본다면,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연속극의 한 프로만이라도 소년, 소녀 가장이 살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비춘다면 일반 국민들의 세상 보는 눈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의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호화저택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전부 연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지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로 없거나 있더라도 잘못 그려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 등 민중들은 가능하면 현실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정치인들은 어디서 돈을 구해다 선거를 하는지, 자본가들은 어떻게 돈을 벌어서 그렇게 떵떵거리면서 사는지, 경찰은 물론 안기부나 기무사같은 정보기관의 내부는 어떻게 굴러가는지 가급적이면 좀 구체적으로 알자는 입장입니다. 노동운동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도 가끔 국민학생이나 중학생과 이야기하다 보면 제 사고가 고정되어 있고 굳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거북선을 만든 사람은 거의 모두가 이순신 장군이라고들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서울에서 태어난 양반집안 출신입니다. 그런데 배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양반 출신이 어떻게 거북선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거북선은 뱃사람과 목수들이 만든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아는 어느 교수 한 분이 87년에 학생들이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갖다 붙이니까 “학생들이 대자보를 온 벽에다 붙이는 바람에 이 좋은 학교가 엉망이 됐다. 학생들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왜 저 모양으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교수님은 학교의 고용인이 아닙니까? 자기 학교에 자기들이 필요해서 대자보를 붙이는데 뭘 걱정하십니까?”
87년 대투쟁 당시 노동자들이 집회를 할 때 회사의 상무, 이사, 총무부장 등에게 나와서 노래 한 곡만 부르라고 해도 이들이 벌벌 떨었습니다. 항상 만만해 보였던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덤비니까 겁을 집어먹은 것인데, 이들은 평소에 온순하던 노동자들이 이렇게 된 것은 외부세력의 개입이 있기 때문이라고 오해합니다. 이처럼 이들은 항상 지배, 관리, 통제의 습성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현실을 바로 보는 것 같지만 가끔 우리의 의식 속에는 억압당하고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우리가 열심히 해야 회사가 잘되고 회사가 잘되면 우리도 잘된다” 하는 식의 종업원 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상황판단도 잘 해야 하고 정세분석도 늘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3). 세상은 변화하는 것

세상의 모든 것은 날마다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세상에 멈춰져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87년 대투쟁이 일어나고 난 뒤 노동운동은 활발하게 발전했는데,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노동운동이 침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간부들이 구속당하고 해고당하고 노조활동은 위축되었습니다. 또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반성의 글들이 나오고 한참동안 대중들의 맥을 빼놓았습니다. 노동운동을 낮게 보고 욕하는 이런저런 글을 보면서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실망도 하고 분노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글들은 노동운동도 세상만물과 같이 늘 변화하고 발전하는 생물체와 같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정불변의 것으로 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운동의 발전, 정세의 변화를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이 조금만 변해도 혼란스러워하고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항시 변합니다. 87년 이전의 노동조합운동을 돌이켜 봅시다. 당시 한국에서는 노동운동이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87년 투쟁은 기적과도 같은 사건일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과학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고정불변 한다는 잘못된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때론 후퇴하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왜 발전합니까? 우선 사람의 생각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활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의 형태와 질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투쟁하는 방법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발전의 법칙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데는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법칙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96년 12월과 97년 1월에 있었던 총파업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노동자의 편을 드는 세력과 자본가의 편을 드는 세력이 뚜렷이 나누어집니다. 언론과 공권력은 자본가의 편을 듭니다. 노동자와 가족들, 봉급생활자들, 농민들, 대학생들, 그리고 민주세력들은 노동자의 편을 듭니다. 이것을 보면 사회의 여러 세력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현상은 상호연관성을 맺고 있으며, 날마다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현상과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그냥 오는 게 아닙니다. 기온, 습도, 공기밀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둘째, 양질전화, 즉 양의 축적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질이 변하면 양도 변합니다. 어떤 것이 많이 늘어나고 커지면 마침내 전혀 새롭고 다른 것으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노동운동에서 양의 축적이 질적 변화를 촉발시킨 예는 87년 대투쟁입니다. 87년 대투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억압과 수탈이 노동자들의 엄청난 분노와 반발을 일으켰고 어느 시점에 이르자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 87년 노동자대투쟁입니다. 96년 12월과 97년 1월의 총파업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동안 성장한 노동운동의 역량이 없었다면 50년만의 총파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양질전화는 사회적인 현상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노동조합이 없을 때에 비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욕하고 때리던 중간관리자들이 함부로 날뛰지 않습니다. 사장 마음대로 결정하던 임금도 노동자대표와 협상으로 결정됩니다. 자연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은 100°C가 되기 전에는 뜨겁기만 하지 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100°C가 되면 물이 수중기가 되면서 액체가 기체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셋째, 대립물이 통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예로 들자면 서로 대립하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본가가 있으면 노동자가 있고, 양극이 있으면 음극이 있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으며, 북극이 있으면 남극이 있습니다. 악이 없다면 선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립물 자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치가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즉 때로 지배자가 피지배자가 될 수 있고 피지배자가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불과 100여 년 전 만해도 우리나라의 지배자였던 전주 이씨 왕조는 지배자의 자리에서 쫓겨 난지 오랩니다.
이런 것이 자연과 사회의 공통적인 발전 법칙입니다. 인간의 의식도 마찬가지고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운동도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관계와 연관을 맺으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통일을 이루는 관계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의 힘이 역전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변화가 더디고 운동이 침체될 수 도 있지만, 일정한 시점이 되면 질적으로 변하고 발전하게 마련입니다.


4).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노동조합 간부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활동해야 합니다. 작년 임투와 올해 임투는 다릅니다. 사용자의 자세가 달라졌고 주변 정세가 달라졌고, 그래서 조합원의 요구가 달라졌습니다. 똑같은 투쟁은 두 번 다시없습니다. 그러기에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노동조합의 경험, 다른 노동조합의 경험, 또는 다른 나라 노동조합의 경험에서 노동운동의 원칙을 끌어내야 합니다. 노동운동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원칙은 무수한 투쟁의 경험을 통해서 다다른 공통의 결론이고 교훈입니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부의 머리 속에서 창의성을 짜낼 것이 아니라 대중 토의를 통해서 창의성을 높여 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 할지라도 대중 토의를 통해서 나온 창의적인 방법이나 현실적인 판단을 쫓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자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소중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중시하지 않으면 권위주의가 됩니다. 개인의 판단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미 문제가 있으면 해결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운동은 낙관주의가 필요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 있으면 잔잔한 날도 있습니다. 별 빛 조차 볼 수 없는 칠 흑 같은 밤이 있는가 하면 보름달 환히 비추는 환한 밤도 있습니다. 지금은 어렵고 조합원들도 자신 없어 하더라도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집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이것을 명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올바른 노동자적 자세

1). 민주주의적 태도를 가져야

조합활동을 하는 지도자들이 권위주의적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민주적인 집행부가 들어선 경우에는 덜합니다만, 87년 이전의 노동조합 간부들은 대부분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말투부터 달랐습니다. 조합원을 “우리 애들”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이런 간부들이 많습니다. 조합사무실은 호화로웠습니다. 어떤 노동조합에서는 조합원들이 위원장을 노무담당 상무로 착각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위원장이 조합사무실 보다는 관리사무실에 더 많이 가 있고, 시간이 나더라도 현장보다는 밖으로 나돌아다니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을 것입니다. 과거 어느 연맹 위원장이면서 단위조합 위원장이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월급에서부터 모든 것을 상무이사급으로 대우받았습니다. 회사에서 차도 대주고 운전사도 대주었습니다. 이런 정도였으니 조합원들이 위원장을 어떻게 보았겠습니까?
지금 민주노조라 불리는 노동조합의 간부 중에서도 일상생활이 민주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특히 부인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전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권위주의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계급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힘이 센 사람이 큰소리치고 특권을 누리는 사회다 보니, 자연히 지배계급의 위치에서는 권위주의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권위주의를 가지고 유지될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힘이 만들어질 수 없는 조직입니다. 물론 지도자가 권위가 있어야 하지만 스스로 권위를 부린다고 권위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조직의 지도자는 조합원 대중이 권위를 부여해 줄 때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지도자는 민주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노조의 요건

최근 조합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조합이 민주적인 노동조합인지 어용적인 노동조합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끔씩 어떤 간부들은 민주와 어용에 대해 매우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87년 이전의 노동조합은 어용적이고 87년 이후에 생긴 노동조합은 민주적이다” 하는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파업을 해본 적이 없는 노동조합은 어용적인 노동조합이고, 파업을 경험했던 노동조합은 민주적인 조합이다, 직선제를 하면 민주고 간선제를 하면 어용이다” 하는 구분들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노조의 요건은 무엇이겠습니까? 노동조합은 우선 자주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기업단위 노동조합에서는 자주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동일한 결정을 두고서도 자주적 결정이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로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예전에는 간선제로 위원장을 뽑거나 또는 노조 집행부가 회사 쪽에 붙어서 뒷거래를 했거나 하면 어용이라는 것이 확실했는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어영부영하면 어용이라고 하면서 ‘맛이 갔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지도부에서는 “그럼, 네가 해봐라” 하면서 반발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사정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은 있습니다. 첫째, 조합기구의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선거제도, 대의제, 강력한 집행체제, 그리고 민주집중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가끔씩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의원의 역할입니다. 대의원은 자신을 활동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삼권분립에 입각하여 집행부를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의원대회에서 사업계획과, 예산·결산에 대한 심의만 하면 대의원의 역할은 끝나는 것으로 알곤 합니다. 이렇게 되면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서 중간허리의 마비현상이 오게 됩니다.
또한 노동조합의 제반 기관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더라도 조합원들의 참여의식이 낮을 때 민주적인 노동조합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조합원들의 의식은 저절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일상활동 즉 조직활동, 교육활동, 선전활동, 문화활동 등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일상투쟁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현장활동과 현장모임을 통해 조합원들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른 조직과 연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노조는 노조간부와 조합원들 모두가 스스로 규약과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민주적인 노동조합에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들은 권위주의적인 조합에서는 이루어지기가 힘듭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뒷받침될 때 민주적인 간부가 되는 것이지, 그냥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 조합원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고 민주적 자세가 갖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노조기구의 민주적 운영을 통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조합원 대중 속에서 간부들이 열성적으로 활동할 때 민주적인 자세가 확립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민주적인 자세를 갖춘 간부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은 권위주의를 없애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

민주주의는 비판을 보장하고 허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조합원들의 비판에 대해 변명만을 늘어놓거나 반발하는 간부가 있는데, 이런 사람은 지도자가 될 자질이 없습니다.
노보의 첫 면 오른쪽 맨 위를 위원장 사진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는 위원장의 사진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노보의 위원장 사진을 보면서, 전두환 정권시절에 우리가 9시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운동권의 병폐 가운데 하나가 ‘서로 대강 봐주기’입니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비판이 없으면 조직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남이 자기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하는 잘못을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애정 있는 비판이 필요합니다. 비판이야말로 권위주의를 없애는 가장 훌륭한 수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매개가 있어야 합니다. 뒷자리에서 어떤 사람에 대한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상집회의, 대의원회, 현장소모임 등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사업과 활동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2). 대중성을 몸에 익혀야

노동조합 간부는 대중성을 가져야 합니다. 대중의 정서, 고민, 어려움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대중노선’입니다. 무조건 대중성을 갖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중 속에서 대중 속으로’라는 말은 대중노선을 가장 잘 표현한 말입니다. 임금인상 요구안을 만들 때 비밀이 샌다는 이유로 집행부 만 보안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섭 요구안이 무엇인지, 교섭은 언제 하는지, 교섭위원은 누구인지 조합원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어떤 조합에서는 조합원들이 단체협약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기업의 지방에 있는 사업장 노동자들이 새로운 지부를 만들려고 해도 집행부가 규약을 공개하지 않아, 규약상 조직대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1인1요구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장 단위로 집행부가 의견을 모아 요구안을 만들고 이를 다시 전체 조합원의 토의에 부치는 바람직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노동조합들이 임금인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으나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참여도가 낮기 때문이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광범한 토론을 조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밑으로부터의 의견이 잘 모아져야만 단체협약을 갱신할 때 조합원들이 주인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데, 조합원들이 협약 요구내용을 잘 모르고 있으면 그 투쟁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노조의 모든 활동에 주인으로 나설 수 없습니다. ‘알아야 면장 한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은 집행부의 안이 조합원에게 내려갔다가 다시 집행부로 올라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의견을 집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조합간부의 대중성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일할 때와 조합간부로 상근 할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말을 하는 간부가 많은데, 이것은 앞서 말한 과정이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대중을 신뢰하고 믿을 때, 그리고 대중을 존중하고 확신을 가질 때 대중노선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자면 집행부의 계획이 평소 실제 활동을 통해서 조합원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노동대중에게 헌신하는 자세를 가져야

간부는 헌신성이 있어야 합니다. 조합간부의 헌신성이 없으면 지도핵심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헌신성은 개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대중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로부터 시작됩니다. 동료들의 어려움, 고통을 잘 알고 대중으로부터 투쟁성, 창의성을 배우는 가운데서 헌신성은 커지게 됩니다.
또한 노동대중의 상태, 요구, 의식을 직접 부딪쳐서 조사하고 경험하면서 헌신성이 높아집니다.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도 있구나”하고 자각할 때 헌신성은 높아지게 됩니다. 같은 공장의 울타리 안에서 근무하는 사외공, 파견근로자들을 같은 동료로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구호를 외칠 때는 ‘노동자는 하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종집회나 투쟁하는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이런 생각은 바뀌게 됩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부품공장에 가서 보면서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여기에 비하면 훨씬 낫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영세사업장, 하청·용역회사 소속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게 되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출발점으로 삼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헌신성이 나올 수 없습니다. 비판을 올바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형제들에 대한 수탈, 억압, 탄압에 대해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증오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투쟁을 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헌신성이 나올 수 없습니다.

4). 노동자적인 도덕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노동자적인 도덕성을 갖춘다는 것은 우선 ‘예의바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이 이야기는 마치 봉건 질서를 강조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실은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일반대중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제, 그들이 좋아하는 문제를 인정하면서 개혁할 생각을 해야지 이것을 무시해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 사회의 도덕을 완전히 부정한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을 전적으로 인정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인정해야만 하는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중은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반면에 대중의 전근대성과 봉건성은 활동과 실천을 통해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육장에 가서도 밤새도록 술 마시고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부인에게 독재자로 군림합니다. 나쁜 습관과 행동은 모두의 활동과 투쟁을 통해 극복해 나가려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도덕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배세력이 바라는 도덕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충효는 뭡니까? 지배세력에게 도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운 ‘삼강오륜’ 이라는 것은 기존의 질서와 윤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강조하는 도덕은 무엇입니까? 동료애입니다. 동료애에 바탕을 둔 단결은 튼튼합니다. 불의에 대한 항거, 사실에 근거한 비판정신,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 등이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도덕입니다.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이런 도덕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형식적인 도덕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노동조합 간부들에게는 이런 도덕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5). 노동자의 품성을 갖추어야

마지막으로 노동자적 품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노동자는 우선 소박합니다. 작업복이 편하고 포장마차가 어울리는 그런 소박함입니다. 그리고 솔직합니다. 그리고 비굴하지 않지만 겸손합니다. 또한 성실하고 용감합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개발하고 다듬어야할 품성입니다. 간부들이 가져야 할 품성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좋은 품성들을 더 가다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간부로서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1) 나는 어쩌다 간부가 되었는가?

- 역사가 나를 부르기 때문에?
- 인간성 좋고 희생정신이 강해서?
- 떠밀려서? 노조 간부하면 장가갈 수 있다고 해서 / 위원장이 부탁해서
- 내가 왜 간부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2) 간부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 따라주지 않는 조합원
- 할수록 힘겹다 (잘해보고 싶지만 능력이 딸린다)
-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고 노조간부의 노동시간은?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임금 적고 해고에 구속에 알아주지도 않고)
- 먹고는 살아야지(경제적 어려움)


4. 노동운동에서 간부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인가?

1) 노동운동이란 무엇인가?

- 사람을 바꾸는 운동이다 = 세상의 주인으로 살려는 당당한 선언
- 노동조건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다.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정치세력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 노동운동은 가장 순수하고 정의로운 운동이다(전태일) / 아름다운 저항
- 아름다운 청년

2) 간부가 차지하는 지위는 무엇인가?

- 사람 몸과 같은 노동조합 조직체계 / 노동운동의 성패는 간부들이 좌우한다.
- 불행한 노조는 간부와 조합원이 분리 될 때

3) 간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람/노 조/하는 일/고장나면?

두뇌/위원장/노조의 얼굴/뇌 사
심장/집행부/부서활동/조합원을 하나로 모으고 통일성 ․방항성제시/심장마비
척추/대의원/집행부와 조합원을 연결(쌍방통행 / 야당이 아니다)/곤 란
핏줄/현장조직/조합원들의 풀뿌리 조직 / 조합원들 스스로 움직인다./동맹경화
몸/조합원/노조 그 자체/관료주의


○ 단결의 중심이 된다.(대중성)

- 조합원 상태에 걸맞은 방침 결정하고 추진해야/ 공개, 현장토론, 간담회, 설문조사, 판단근거
- “노동자는 스스로 참여하여 결정한 것만 행동에 옮긴다.“

: 공개와 투명한 운영,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원 참여 보장, 주요 결 정 참여(의결기관)
: '소름끼치는 회의‘ 하지만 특히 대중조직에서 회의활동은 매우 중 요, 올바른 운영원칙이 해결책

○ 갈 길을 제시한다.(지도력)

- 조합원들의 요구에 기초해서 결정을 하여야 한다.
- 민주주의와 함께 규율도 매우 중요
: 결정과정은 민주주의로, 결정되면 반드시 실천하고 책임지게
: 결정할 때는 적극 참여하고 집행할 때는 무책임한 게 가장 최악
: 조합비(의무금), 결정사항 앞장서서 실천, 조직의 비밀 지키기
: 간부들의 규율과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
- 노조운영의 기풍과 전통이 중요하다.

○ 일상활동을 통해 조합을 강화한다.

- 일상활동의 중요성 : 갑자기 잘하는 노조 없어 / 기초체력이 튼튼 해야 / 움직이는 노조
- 벼락치기 공부가 한계가 있듯 노조의 힘은 바로 노조의 일상활동에 서 나온다.
- 노동운동은 상대가 있는 운동이다.
(우리가 쉬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본의 힘이 직장을 압도하 는 것)
- 일상활동이 없으면 회사의 잦은 공세에 대책이 없고 노조 힘이 쪼 그라 든다.
: 가랑비에 옷 젖는다.(신경영전략)
- 조합원 개인의 요구를 집단의 요구로 모아내고 낮은 문제로부터 높 은 문제로 낮은 단계의 투쟁으로부터 높은 단계로의 투쟁으로 발전 시켜 내야 한다.

○ 해결사노조 X 자판기노조 X

- 조합원이 끊임없이 모이고 움직이게 하자
- 요구를 해결하는 과정은 반드시 조직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성 과를 남겨야
- 조합원의 불만과 요구를 집행부가 다 해결해 주는 식은 곤란
- 요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은 조합원이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 도록 유도해야
- 해결사노조, 자판기노조는 조합원을 말 많은 구경꾼으로 만들 뿐
- “작은 실천이라도 스스로 참여해서 이겨보는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집단에게 잠재해 있는 힘을 발견하고 더 큰 투쟁을 준비한 다.”
- 조합원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들고 스스로 단련되게 만드는 일상 활동
- 이것에 도움을 주는 각 부서 일상활동

5. 사랑 받는 간부가 되자!

○ 장기적인 전망을 갖자!

- 노조를 시작하던 첫 마음을 잃지 말자
- 노동운동, 역사발전의 합법칙성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보자/ 노동 자 민중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는다.
- 전망이 보이면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 산별노조 건설, 정치세력화와 같이 사회근본 문제 해결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 모든 문제를 자신으로부터 검토하자!

- 모든 현상의 주체는 나 / 그래야 답이 있다.
- 조합원이나 다른 간부들을 탓하지 말자!
- 나를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된다.

○ 도덕성과 솔선수범 하는 간부

- 도덕성은 노동운동의 생명(돈 문제․불륜․도박 등 금물)
- 대자본 관계에서 선을 넘지 말아야(회사나 시청을 만나면 반드시 공개하는 기풍)
-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 배움에 게으르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닦는 간부
- ‘너무 힘들다’ → 어디서 힘을 얻을까 → 동지와 동지들의 경험과 동지들의 활동에서!
- ‘하는 게 없고 경험이 부족해 뭘 할지 모르겠다’ (회의운영, 조직활 동, 교육선전활동…)
→ 왕도는 없다. 그러나 빨리 벗어나야
- 실무력과 지도력을 기르자 (배움에 투자할 줄 아는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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